사실 수의대 이야기를 하자면 유급에 대한 얘기가 빠질 수 없으나, 개인적인 이유에 의해서 (본인도 유급 경험이 있기에) 왠지 꺼려져서 쓰지 않고 있었는데 좀더 솔직하고 정확한 얘기를 위해 쓰려고 한다.(사실은 소재가 떨어져서...-ㅅ-;;) 아마 수의대(아님 의약계열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급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4년제 대학에 (경고 같지도 않은) 학사경고라는 제도가 있다면 의약계열 쪽엔 유급이라는 제도가 있다.

 정확히 어떤때 학사경고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유급이랑 기준은 비슷할것이다. 1년간 1,2학기의 평점을 계산했을 때, 2.0이 넘지 못하거나 이수 과목 중에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은 과목이 있으면 유급을 당한다. 학사경고도 2.0이 기준이었던거로 들었는데... 이거야 학교마다 기준이 다를테니...패스~! 물론 유급의 경우도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본2 1학기 기생충학을 가르치러 오신 전남대 교수님은 에프를 마구 남발하려고 하셨었다. (능력있는 과대 덕분에 에프는 최소로 발생했지만...자칫하면 기생충 때문에 1학기 끝나고 휴학할뻔...-ㅅ-;;)

 기준만 들어보면 생각보다 유급 당하는게 힘들거라는 생각을 한다. 맞다. 유급 당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근데 본과에 올라오고 나서는 매년 꼭 유급 당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본1때 가장 많은 수가 유급을 당하고, 본2부터는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지만 그래도 유급하는 사람이 생긴다. 올해 같은 경우는 본4를 제외한 모든 학년에서 유급이 발생한듯 싶다. (예과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생기지 않았을까...하는..-ㅅ-;;)

 나 같은 경우는 재시를 안 보러 가서 유급을 했는데..(자세한 사정을 얘기하면 너무 개인적이고 복잡하니 이것도 패스) 유급을 했을때의 기분은 정말 참담하다. 유급을 당하면 해당 학년을 1년 다시 다녀야 하기 때문에 동기들과도 떨어지게 되고, 그 끔찍한 커리큘럼을 다시 한번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심리 상태는 이러하다. 성적이 떴는데 과목중에 F가 발견된다. 그 경우...

대충 옆 그림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일단 F가 뜨면 교수님께서 재시를 통해 구제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데, 방학 중에 시험을 봐야 한다는 사실도 끔찍하고... (남들 놀때 난 공부해야 한다는...ㅠㅠ) 공부해야 하는 양 또한 한 학기 동안 배웠던 양 전부이기 때문에 다시 할 생각을 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1학기 때 F가 뜬 과목이나 2학기 때 F가 뜬 과목이나 재시는 모두겨울방학에 치뤄지기 때문에 (평점이 2.0이 안 넘으면 재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재시를 보는 때는 12월 말에서 1월 초다. 결국 남들 크리스마스에 애인과 손 잡고 모텔갈때 나는 도서관 가서 엄두도 안 나는 양을 다시 봐야 하는것이다.

 그렇게 재시를 보면 웬만하면 학점을 D나 C로 올려주시는데 재시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올 경우 F가 그대로 유지되고 최종성적정정기간까지 구제받지 못하면 그대로 유급이다.

 유급이 확정될 때의 심정은 성적에 F 한두개 뜰때랑은 비교도 안 된다. 그냥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 (나 같은 경우엔 자의에 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꽤 힘들었었다.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랑 겹쳐서 정신병원 상담 받을뻔...-ㅅ-;;;)

 유급을 가장 많이 당하는 본과 1학년의 경우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건대 같은 경우 공부하기 힘들기로 소문난 해부학과 조직학이 모두 있어서 그 두과목에서 펑크가 자주 난다. 건국대 조직학 교수님은 에프를 잘 때리기로 유명하신 분이고...(물론 왠만하면 거의 다 구제해주시지만... 많을 때는 10명 가까이 유급 당하는 경우도...) 본1의 경우는 공부를 해도 에프가 뜰 수 있는 과목들이 꽤 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와는 상관없이 중위권 애들도 유급을 걱정하게 된다. (물론 최상위권은 그런거 신경 안씀)

 최근에는 예과생들도 유급을 당하는듯한데...(주로 수의대의 유급 제도에 대해 잘 모르시는 외부강사님이 에프를 때리신다.) 내가 예과 때만 해도 예과생은 유급을 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유급 당할 정도로 어려운 과목이 없다.) 아마도 학년이 내려갈수록 더 많이 놀고 수업도 더 많이 안 들어가는듯...(나도 거의 안 들어갔는데... 요새 애들은 교수님 얼굴도 잘 모르는듯...-ㅅ-;;)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니만큼 유급제도로 자격이 미달되는 학생들을 학년마다 걸러내는 제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도 일단 1년 유급을 하게 되면 1년 등록금 천만원에 졸업이 1년 늦어지니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학생 개인으로서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한다. (본인이 공부를 안 해서 그런거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가급적 열심히 공부해서 유급을 안 당하는게 최선이지만 수의대에 들어오면 유급은 늘 옆에서 학생들을 위협하는 존재다. 안그래도 빡시게 공부하는 수의대생들한테 너무 잔인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ㅠㅠ